말 한마디 안 통하는 데 가서도 잘 버텨서 여기서도 잘 버틸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좀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내가 영국에 오기 전에 영국에서 받을 문화충격에 대해 겁을 많이 줬었는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충격은 날씨이다. 내 친구는 영국의 이런 날씨가 좋다고 그랬는데 난 아무리 노력해도 영국의 날씨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다. 거의 날마다 비다. 물론 비온 다음 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등교할 때 그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산은 필수다.

저녁 늦게 연구실에 있으면 몸이 으실으실 추운데 반소매에 남자같은 근육을 자랑하는 영국처자에게 히터를 틀겠다는 말을 난 도저히 못한다. 여긴 옷차림들이 정말 제각각이다. 거의 다 벗은 차림에 한겨울 방한 차림까지 다양해 옷차림만 보고는 계절을 가늠하기 힘들다. 나는 현재 약 83%정도 겨울 옷차림이다. 체감추위가 극한에 다다를 때 100%에 근접한 겨울옷을 입을 예정이다. 그래봤자 몇개 더 끼워입는 수준이겠지만...옷차림이 자유로워서 그런 건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고도 생활모습도 참으로 자유로워 보인다.

그리고 제일 큰 충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게 학생들의 사교방식이다. 일본에서는 학교 선생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내게 지금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 학교는 어디 다니냐, 전공은 뭐냐, 이게 전부였다.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는 아무도 내게 처음부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묻지 않는다. 지금 어떤 연구를 하느냐가 첫 질문이다. 그리고나서 대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연구를 곧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파악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하는 연구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어야 사람 사귐이 가능하다. 강의가 끝나고 파티 비스무리한 게 많은데 간단하게 차를 마시면서 오늘 들은 강의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여기 문화인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시는 분이 내가 유학길에 오를 때 실력과 성실함만 있으면 영국에 가서 성공할 수 있다고 그러셨는데 그분이 말씀하신 '성공'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지만 짧은 경험으로 보면 실력과 성실함에다 연구정체성이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리셉션이 포함된 강의가 하나 있다. 똑똑하고 재미있는 연구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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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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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eezoo 2009/10/22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가을비 기다리던 제 마음이 영국에 가서 머물러있나요. ^^;
    막상 여기도 비 내리니 낙엽이 치덕치덕 차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좋지많은 않네요. ㅋㅋ
    언니 멀리서도 아자아자!

  2. 윤식 2009/10/26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처음이 어렵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익숙해 지는 거니까....그러고 보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냐 보다는 어디에 속해있는가 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인데.....생각이 다르네요..그래서 행동도 문화도 다르겠지만....잘 적응하고 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겨요....

    • 윤오순 2009/11/05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마워요. 시간이 달라서 이제는 메신저에서도 만나기 힘드네요. 그래도 잘 지내요.

  3. 씨그널헌트 2009/10/26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금요일 새회사로 서류'만' 내러 갔다가 세미나 잡혀 들어가서 본의 아니게 2시간동안 이빨을 깠는데 일본의 Ostuka 제약회사에서 파견 나온 '마사노리 가와사키'라는 연구원이 도호쿠 대학을 나왔다케서 아는체를 좀 했다우. 나하고 잘 아는 처자가 그 학교 출신이라고.... 근데 지금은 영국에 있다고..... 근데 이 친구, 그래도 영어 좀 한다케서 이곳으로 보냈을텐데, m을 발음 할때 마다 '이무' '이무' 카더라고... 그래서 McDonald 발음 해 보라 켔더니, 진짜로 '매끄도나르도' 이케 발음을 하더라는 말이지...

    • 윤오순 2009/11/05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매끄도나르도'라 부르던 시절이 그립네요. 그나저나 저 도호쿠대학 안 다녔는데...히토쓰바시대학 다녔어요.